6. 미투 캠페인을 보는 불편한 시선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6-2 남자라서 죄송합니다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이마에 “나는 성희롱범입니다”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는 멀쩡한 남자가 상습적인 성희롱범인 경우도 있으니 여자 입장에서는 매사 긴장할 수밖에 없긴 하다. 문화계부터 학계, 종교계, 정치계까지 거의 사회 전 영역으로 성추행 파문이 확산되면서 “수컷들은 어쩔 수 없어, 원래 문제야”라며 남성 전체가 비뚤어진 성(性)의식으로 뭉친 집단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남자가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남성들을 싸잡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여성에게 문제 제기를 하였다가 “당신도 경험이 있으니 옹호하는 것 아니냐”며 유유상종이라는 비난을 들은 남성은 입을 굳게 다문다. “남성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하지만 남성이라고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만으로 차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편견일 뿐이다. 전체 남성에 대한 매도와 분노 표출, 성급한 일반화 역시 피해의식에 젖은 발상이며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또 다른 역차별이다.
미투 운동은 ‘남성 혐오(남혐)’가 아니다. 따라서 급진적인 미투 운동이 모든 남자를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치부한다면 이 역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근거 없는 주장이나 무고를 할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허위 사실을 포장해 유포하는 행위는 미투 운동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 경우엔 ‘무고’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위험성도 문제지만 자칫 이제 막 시작된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심한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따라서 미투 운동 취지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들은 게 좀 있다”식의 ‘카더라’식 묻지마 폭로는 자제해야 할 것이다. 설령 의혹이 제기되었더라도 피해자들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낸 게 아니라면 일단 정확한 사실이 파악될 때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의혹 제기만으로 죄를 단정 짓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 재판부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철저한 가해자 조사 절차 없이 사과부터 요구하는 것도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 한 번(가해자로) 이름이 거론되면(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타격이 크다. 만약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일이 반복된다면 ‘미투 운동’ 전체의 동력이 떨어지고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
특히 SNS나 인터넷이 대세인 디지털 시대에는 가볍고 다급하게 소문이 나돈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는 만큼 법적, 도덕적 판단이나 발언도 그만큼 쉽게 확산되고 사라진다. SNS를 통한 여론의 즉결 심판은 사실 관계 확인에 앞서 한 개인을 매장시킬 수도 있다. 반론의 기회도 없이 ‘폭로=사실’로 받아들이고 가해자로 지목하거나 가해자 가족에 대한 사실상의 ‘연좌제’식의 악의적인 비난이 가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확인 없이 퍼져 나가는 무차별적이고 선정적인 언론 보도는 인격 살인의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 역시 최소화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이나 신원 공개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익명의 폭로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만 음해 목적으로 미투 운동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 역시 있어야 한다.
미투 운동에 편승해 거짓 고발로 악용하는 ‘허위 미투 폭로’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아니면 말고’식의 허위 폭로 등 무고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무거운 범죄다. 청와대 국민 청원 사이트에는 ‘무고죄의 형량을 늘려주세요’라는 청원도 올라온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