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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08-25 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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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미투 운동은 그동안 묻힌 여성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표출된 것이며, 미투 운동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저술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부터 사회 속 권력을 가진 자의 갑질 횡포까지, 종류만 다를 뿐 한결같은 성차별과 성폭력이 내재해 왔음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폭력은 더 이상 묵인되어서는 안 됨을 역설한다.


우리는 현대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과 성폭력’의 문제에 있어서 둔감하고 비합리적인지 알게 된다. 사회제도적 개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관념과 의식 역시 번데기에서 나비로 다시금 진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된다.


미투 운동을 고발하는 과정에서도 사건의 보도가 ‘피해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 왜 진작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도리어 피해자를 추궁하는 점,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폭력 예방 교육도 피해자가 먼저 조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점 등등을 꼬집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가 갈 길이 멀지만 이러한 논의가 존재하는 만큼 결코 무의미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믿게 된다.


뉴욕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북경에 폭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처럼 10년 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Me Too” 운동이 온 세상에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라며 미투 운동을 격려했다. 전 세계적인 뜨거운 연대와 지지 속에 미국의 미투 운동은 직장 내 성폭력을 예방하고 지원하는 단체 ‘타임스업’(Time’s up)의 설립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Time’s up!” 단어 그대로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은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Me Too”운동의 물결이 거세다. 세상 변화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는 과거형 인사들의 끝없는 추락을 날마다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터질 게 터진 것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일이었을 뿐이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은 정말 말하지 않았던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이들의 가냘프지만 절박한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거나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상호 소통 과정이다. 들을 준비가 안 된 사회가, 왜 그동안은 말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동안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사회 시스템 내에서 문제 제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문화적·제도적·인식적 기반은 매우 취약했다. 거기에다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위축되고 무력해졌다.


성폭력은 무슨 괴물 같은 이상한 놈들에 의해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로 오르내리던 고은은 어린 여성 문인들 앞에서 자기 물건을 꺼내 흔들며 “너희, 이렇게 할 용기 있어? 이런 것도 못 쳐다보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 하며 히죽거렸다. 여성과 약자를 향한 이런 범죄는 오랜 세월 문단이란 조직과 권력을 등에 업고 묵시적 방조하에 계속되었다.


잠깐 과거를 회상해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여학생의 겨드랑이를 만지며 “이게 가슴 만지는 느낌과 똑같다”며 느끼던(?) 남자 선생님, 교문 앞에서 수시로 옷을 벗어제끼던 바바리맨의 기억이 또렷하다. 고려 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해서는 수적으로 압도하는 마초 같은 남자 선배나 동기들에게 치이지 않으려고 더 드세고 기 센 여자인 척하며 살기도 했다. 정치학 박사로, 정치학 교수로,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는데도 “와~ 정치에 지식이 많은 여자 처음 봅니다”라는 뜬금없는 멘트를 종종 듣고 산다. 그들에게 나는 희소한 별종 여성 정치 평론가이다. 하기야 방송 정치 평론의 현장을 보더라도 여성 평론가는 소수인데다 그나마 정치학 전공자도 드물다. 젊고 이쁜 여성들을 양념 삼아 끼우는 판이니 나같이 평범하게 생긴, 꽤 두툼한 살집마저 소유한 중년의 여성 평론가가 버티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온갖 종류의 남자들을 만난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갖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남자들이 술기운을 빌어 추근대거나 심지어 야한 동영상을 전송하기도 한다. 정색하고 문제 제기하면 “술에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거나 “남자 동료한테 보낸다는 것이 실수로 잘못 눌러졌다”는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이 돌아온다. 나같이 중년의 기센 여성도 막상 이런 일을 당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내가 헤프게 보였나?’라는 셀프 점검부터 들어간다. 하물며 젊은 사회 초년생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이런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은 말해서 무엇하랴?
스스로도 돌아본다. 나 역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많은 성희롱 현장을 보고도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무심코 지나쳐 버리거나 애써 모른 척 수수방관하며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Me Too”운동은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고 일상의 권력 관계를 재구성하는 물결이다. 우리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진정한 사회 혁명을 위한 비싼 대가를 치르는 만큼 세상은 변화하고 진보할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인간은 살아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고 말했다. 나 또한 나의 딸이 살아갈 세상이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이 글을 적는다. 우리의 딸과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인간이기에 평등하고 존중받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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