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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1-2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08-25 2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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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오늘 미투 티셔츠를 입는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1-2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


제75회 골든 글로브 사상식에서 여배우들과 함께 ‘반 성폭력’ 메시지를 상징하는 블랙 드레스를 입은 오프라 윈프리는 새로운 페미니즘의 시대를 선포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힘 있는 남성들을 향해 감히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믿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time is up)!” 그녀는 반복해 외쳤다. “Their Time is Up! Their Time is Up! Their Time is Up!”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아마도 1986년 경기도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한 권인숙이 미투 운동의 시초였을 것이다.  이후에도 1993년 서울대 교수 성희롱을 고발한 여학생 조교, 2009년 장자연 씨 자살 등 한국 여성들도 계속 “미투”를 외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목소리들은 번번이 묻히고 잊히곤 했다.  그러다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한국판 미투 운동의 방아쇠를 당겼다.


한 용기 있는 여성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가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신호탄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사회적 지위와 힘을 가진 여성 검사가 미투 운동의 선봉에 섰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검사’라는 직업적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검사도 직장 내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에 그간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하나둘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대표하는 검찰 내 폭로가 사회 곳곳에 잠들어있던 분노를 깨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라도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이 주목받고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 되었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은 정말 말하지 않았던 것인가? 사실은 우리가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윤김지영은 미셀 푸코의 ‘파르헤지아(parrhesia)’ 개념을 빌려 여성들의 ‘폭로’ 행위가 ‘두려움 없이 말하기’의 양식이라고 설명한다. 폭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차이가 클 때 약자인 피해자가 선택하는 가장 절박한 수단이다. 이것은 ‘폭로’라는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피해를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사회문화적·인식적 기반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의 외침은 남성 중심적인 법 해석과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문화로 인해 무력화되곤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2003년부터 ‘성폭력 피해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열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피해자의 말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적 인식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여 ‘잘 듣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적극적인 ‘공감’이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정상화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함을 뜻한다.


이처럼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하자 문학계, 연예계, 학계, 군, 공무원, 종교계, 정치계 등 거의 전방위적으로 성폭력 피해 폭로가 날마다 뉴스 앞면을 차지하고 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원로 시인 고은을 필두로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재현, 조민기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들이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다.  어떤 대학에서는 한 과의 남자교수 4명이 모두 가해자로 지목되어 수업 진행이 힘들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만연한 성범죄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것이 재확인되고 있다.


인권과 진보를 얘기하며 차기 대권 주자로 촉망받던 한 정치인이 어린 여성 비서를 성폭행해 왔다는 뉴스는 정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기세다.  이처럼 직장이나 상하 위계적인 관계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대개 우월적 지위와 권력이 수반되기에 저항하기가 힘들고 은폐되기도 쉽다.  이런 측면에서 미투 운동은 단순한 남녀 사이의 성문제가 아니라 부당한 권력 갑질에 대한 고발이자 변화의 요구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적당히 은폐될 수 있었던 일들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재규정되며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것은 분명 역사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바다의 잔잔함 뒤에는 이전의 작은 파도를 모두 덮치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기 마련이다”라는 말처럼, 이제 침묵의 시대 뒤에 세상을 바꾸는 변혁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숨지 않으려 한다. 침묵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미투(Me too)는 위대한 저항이며 거부다. 자기희생을 동반하는 피해자들의 절박함과 절실함이 세상을 바꾸는 변혁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의 방관과 침묵을 반성하며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결코 녹록해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은 분명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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