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오늘 미투 티셔츠를 입는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1-4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성폭력 사건의 경우 대부분의 가해자는 우선 부인부터 한다. 성추행의 의도가 아니라 친근함의 표시거나 격려의 차원이었다고 둘러댄다. 친밀한 관계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일로 치부해 버린다. 국회의장까지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이 골프장 캐디의 가슴을 만진 성추행 사건에 대해 “딸처럼 생각되어 그랬다”고 답변한 것이 한 예이다. 그러나 보통의 아버지들은 성인이 된 딸의 가슴을 주무르지는 않는다.
다음 단계는 사과인데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연출가 이윤택의 경우 공식적인 기자회견-그것도 사전에 리허설까지 한-을 하면서 사과의 형식(?)을 취했지만 성폭행은 아니라며 강하게 항변했다. 직접 피해 당사자를 찾아가 반성하며 사죄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배우 조민기는 여학생 성추행 의혹에 대해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가슴을 툭 쳤을 뿐”이라는 뻔뻔한 해명으로 듣는 이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성폭행 의혹 보도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고은 시인은 한 달 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추행 혐의를 부정했다. “나의 과거 행실이 야기했을지 모를 의도치 않은 상처들에 대해 이미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지만 일부 여성들이 나에 대해 제기한 습관적 성폭력 의혹에 대해선 단호히 부정한다”면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명예를 지키며 앞으로도 계속 집필을 하겠다”고 했다. ‘후배 격려를 위한 행동이었으나 오늘날 성희롱에 해당하면 사과’라는 조건까지 달았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이야기인가? 과거엔 이 정도는 성희롱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이제 시대가 변해 ‘굳이’ 성희롱으로 비난받는다는 억울함이 배여 있다. 이것은 도대체 사과인가, 사과가 아닌 것인가? 이쯤 되면 가히 도덕적 치매 수준이다. 그에게는 일시적 오락이나 자극 추구에 불과했던 성폭력이 피해 여성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고 정신을 파괴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윤택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은 "더러운 손을 20년이 다 되도록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의 상처에 두 번 소금을 뿌리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