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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2-6 성폭력 피해자 되기의 어려움)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10-07 09: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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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2-6 성폭력 피해자 되기의 어려움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 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건이 일어나도 쉬쉬하거나 미봉책에 그치기 일쑤다. 고용이 불안한 계약직의 경우는 잘릴까봐 문제 제기할 엄두도 못 낸다. 남성중심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기껏 용기 내 신고해도 묻히거나 문제 직원 등으로 낙인찍혀 ‘중도 퇴사’를 당한다. 게다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곧바로 이어진다. “야한 옷 입었냐?” “둘이 사귄 거 아니야?”, “네가 꼬리쳤겠지”라며 ‘평소 행실’을 비난하거나 “술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는 발뺌을 듣기 일쑤다. 성폭력 피해자로 불리는 순간부터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된다. 성폭력에 대해 사회가 지닌 통념과 맞서 나가면서 끝까지 가려면 오랜 투쟁을 견딜 수 있는 의지와 맷집이 필요하다.


2015년 여성 가족부 ‘성희롱 실태조사’에 의하면 성희롱 피해자의 78.4%가 ‘참고 넘어간다’고 했다. 신상 공개와 가해자에 대한 미진한 처벌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그나마 ‘유명인 미투’는 공론화되기 쉽고 사회적 처벌이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직장 상사 등 일반인 가해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는 호소도 나온다. 피해 현장에 둘밖에 없었던 경우라면 성폭력 피해를 명확하게 재구성하거나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한술 더 떠서 뻔뻔한 가해자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명예 훼손죄나 무고죄로 피해자를 고소하며 스스로 지쳐 포기하게 만든다. 현행 형법상으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 훼손’도 명예 훼손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2013년 이전까지는 친고죄로 되어 있었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고소를 하려해도 짧은 공소 시효 때문에 처벌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참고로 성폭력은 반인륜범죄라 공소 시효가 없는 나라들도 많다.


성 문제에 비교적 관대한 처리 관행도 문제다. 상황이 불리해지는 경우에 가해자들은 성추행을 인정하는 대신 성폭행 부분은 부인한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형 성폭력에서 과연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동의’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강요된 복종을 자발적 동의라고 오인하는 성폭력 가해자들은 여성의 ‘No’를 부정이나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제 재판에서도 외국과는 달리 피해자인 여성의 ‘의사에 반한 행동인가’가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이 있었는가의 여부로 성폭행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기준이다. 이 과정에서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포기해 밥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씻지 못할 마음의 상처가 무기력증과 우울증 등을 동반해 평생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더 자극적인 증언을 끌어내려 연락하는 기자들과 언론의 보도방식은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피해자의 실명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른다. 용기 내서 폭로한 당사자가 기사 한 줄에, 전화 한 통에 다시 상처받는다. 이는 피해자들을 두 번, 세 번, 끊임없이 죽이는 것이다. 피해자 신상 밝히기를 멈춰야 하는 이유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모든 이목은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에게 집중되고 카메라가 비춰졌다. 언론은 가해자로 지목되는 ‘안태근 성추행 의혹 사건’이라는 제목 대신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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