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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3-6 침묵의 동조자들)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2-12-09 09: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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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뻔뻔하고 무지한 수컷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3-6 침묵의 동조자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는 업무 공간에서 상사에 의해 이루어지는데다 해당 조직에서 고락을 함께했던 동료 선후배들과의 관계까지 엮여 있게 마련이다. 설사 용기 있게 피해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또 다른 권력 관계에 의해 묻히기 일쑤다. 연희단거리패의 000처럼 성폭력 실태를 알고도 오히려 일부 여성 단원에게 강요하는 묵시적 강요 혹은 잔인한 방조도 있다. 영화감독 000은 신인 여배우에게 “깨끗한 척 조연으로 남느냐,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나을 것 같아?”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윽박질렀다.


잡지 ‘황해문화’의 편집주간인 김명인 교수는 “(나를 포함해) 모든 남성 작가들은 한국 문단에서 이뤄진 성적 추행과 희롱의 ‘잠재적 용의자’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다”고 고백했다. 80년대 이후에도 웬만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정도는 사건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젠더 의식 수준이 저열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각종 문단 행사의 뒤풀이 때나 회식 자리에서나 거의 예외 없이 여성들은 언어에 의한 것이건 언어 이상의 행동에 의한 것이건 각종의 성적 희롱과 추행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들의 방어 수단이라야 일찍 자리를 피하는 것 외엔 없었다”면서 “나도 그런 자리가 내심 매우 불편하면서도 그 자리의 ‘가해자들’을 한 번도 제대로 제재하지 못했고, 소극적인 문제 제기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결국 나도 공범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던 것”이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성희롱이나 성폭행은 권력을 등에 업고 하는 성적 갑질이다. 이러한 피해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서로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더라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조직 내에서 너무 공고화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말해 봤자 2차, 3차 피해가 오히려 걱정되는 상황이라면 쉽게 도와주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다. 성적인 문제는 어쨌든 제3자가 개입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다 특히 끼리끼리의 패거리나 폐쇄적인 조직 문화인 경우는 일정한 서열 체계 안에서 권력자의 눈에 비껴나게 되면 엄청난 응징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권력 갑질에 순응하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들을 외면했던 모든 사람들 역시 가해자다. 피해 여성들이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말해봤자 안 바뀌는 사회”에 있다. 성추문 사건은 회사 이미지를 훼손하는 매우 골치 아픈 일로 치부되기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이를 은폐하기 바쁘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여성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조직의 싸늘한 시선이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들은 얼마나 잘 침묵하는가로 조직 내 충성도를 확인하기도 한다.


회식 자리 때마다 강제로 끌어안고 신체 부위를 더듬는 상사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던 여직원은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이 경우 목격자의 한마디 증언이 정말 중요하지만 대부분 불이익을 받을까봐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동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윤택 연출가가 연극배우들을 상대로 “내 방으로 와서 안마를 해 달라”며 지속적인 성추행을 할 때 안 들어가겠다고 저항하던 단원은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라는 주변의 비난을 들었다.


이들은 여기서 한 술 더 떠 피해자에게 함부로 낙인찍기에도 가세한다. “너도 뭔가 잘못을 했겠지, 평소 옷차림이 좀 야했어.”, “그때 바로 문제 제기 하면 되지 왜 지금 와서 말해?”, “회사 시끄러워지니까 좋냐? 좋은 게 좋은 거니 좀 참지 그래.” 이런 말들은 피해자의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무서운 독화살이 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떠했는가? 남성, 여성을 떠나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죄의식 없이 일상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수많은 성범죄의 순간을 목도하면서 ‘나는 당당하게 나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어쩌면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를 방조하고, 적극적으로 같이 나서 주지 못했던 우리 모두가 가해자인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에 피해자에게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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