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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4-2 당신도 ‘꽃뱀 감별사’입니까?)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1-09 09: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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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성을 둘러싼 '말'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4-2 당신도 ‘꽃뱀 감별사’입니까?


“여성이 남자와 술을 함께 마시거나, 함께 밤길을 걷거나, 심지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그녀가 바닥에 눕혀져 성폭행을 당하고 싶다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세기에 <타임> 편집장이 한 말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했던 김지은 전 정무비서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더 이상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성인 여자가 한 번도 아니고 4차례나 성관계를 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하냐.”, “그렇게 싫었으면 바로 사표를 던지면 되지, 이해가 안 간다.”, “동의하에 이루어진 화간이다.”, “사실은 사생팬이었다더라.”, “딴 여자가 생기니 질투심에 폭로한 거다”등의 억측성 댓글이 SNS를 통해 급속히 유포된 후였다. 서지현 검사 역시 “성추행 문제와 인사 문제를 결부시키지 말라”,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 아니냐”라는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현직 부장검사를 상대로 ‘2차 피해’를 봤다며 명예 훼손 혐의 수사를 요청했다.


인터넷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의 ‘신상‘을 터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쯤 되면 성폭력을 옹호하는 정도를 넘어서 동참하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고통스러운 피해를 힘겹게 용기 내어 세상에 공개했던 이들이 이처럼 2차 피해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묻지마 식의 비난이나 조롱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사이비 미투 경계론’이나 ‘음모론’ 같은 주장은 말 못하고 숨죽이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2017년 7월 서울여성노동자회 실태조사에 의하면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 제기했다가 불이익이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퇴사한 이들이 10명 중 7명꼴로 나타난다. 성폭력을 당한 뒤 파면이나 해고 등 신분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따돌림, 폭언, 폭행, ‘꽃뱀‘ 꼬리표 등 정신적 학대를 겪은 비율도 절반이 넘는 57%에 달했다.


조사나 수사 과정에서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먼저 의심하는 수많은 질문에 시달리곤 한다. “둘이 좋아서 사귄 거 아니냐.”, “네가 유혹한 것은 아니냐.”, “당시의 침묵은 사실상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지?”, “뒤늦게 신고하는 의도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기본이다. 피해자의 평소 행실, 직업, 전력 등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으로 판단된다. 한마디로 ‘목련처럼 희고 순진무구한 여성’이라야 이 어려운 ‘피해자 되기’의 관문을 통과해 ‘꽃뱀’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해 ‘평소엔 반듯하고 좋은 사람인데’, ‘술이 취해 실수한 것’이라거나 ‘성적 충동 억제 못해서’, ‘남자가 실수로 한 번 그럴 수도 있지’라는 면죄부가 쉽게 주어지는 것과는 비교된다.


남성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서 양산된 이런 ‘피해자 때리기’ 문화는 성폭력의 원인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돌리고, 가해자를 무고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작동기제로 활용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허위 강간 신고율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허위 신고를 전체 강간 신고율의 2~4%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도 일상생활을 평소와 다름없이 영위하거나 법정에서 이성적으로 대응하면 “피해자답지 않다”는 비난을 듣는다. ‘피해자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편견과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을 덧씌우며 강요한다. 피해자는 폭로를 결심한 순간부터 세상의 차가운 편견과 통념들을 헤치고 나가야 할 힘든 과제를 떠안게 된다.


게다가 성폭력 피해자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도 너무 나빠도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꽃뱀’ 프레임에 연결된다. 피해자의 진술이 너무 구체적이거나 반대로 기억을 잘 못해도 의심받기 일쑤이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성희롱을 폭로한 여성에 대해 한 현직 변호사는 “7년 전 일을 장소와 시간별로 막 나눴던 대화처럼 기억하고 있다”며 “이런 천재는 흔치 않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반면 현실의 많은 사례는 “피해 당시 주변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해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도리어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17년 6월, ‘호식이두마리치킨’ 전 회장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당시 회장이 여직원을 호텔로 강제로 끌고 갈 때 한 시민이 나서서 현명하게 대처한 탓에 여직원은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폭력을 당하고 있던 사람에게 손길을 내민 용감한 시민은 ‘꽃뱀 사기단’으로 인터넷에 오르내렸다. 그는 억울함에 고소까지 했지만 누리꾼들이 ‘저 여자들‘이라는 포괄적 표현을 썼기 때문에 명예 훼손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이 부분에서 ’저 여자들‘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떻게 쓰여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약간 애매해서 구체적 서술 부탁드립니다) 피해자를 도와주려는 사람에게까지 무차별적인 조롱과 비난이 가해지는 현실에서 누가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겠는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권력자들의 ‘갑질’ 관련 기사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분노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직장이나 사회적 권력관계 하에서 일어나는 ‘갑질 성범죄’는 꽃뱀 딱지를 붙이며 싸고도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사실관계 다툼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법적 절차에 따라 진위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근거 없는 ‘카더라’ 식의 2차 가해는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무책임하고 잔인한 행동이다.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병폐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묵시적 동조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 깨기로부터 시작하여 2차 가해까지 철저히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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