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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 5-8 미투의 사각지대 )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5-08 15: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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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지만, 이제 두려워하는 것을 멈출 때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5-8 미투의 사각지대


이제까지 언론이 주목한 미투 운동 가해자들은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들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 사실에 시민들은 함께 분노하며 피해자에게 기꺼이 힘을 모아 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미투 운동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아주 평범한(?) 소시민인 한국 남자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었던 수많은 이주 여성들의 미투 외침은 미투의 사각지대 속에서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장 사장, 감독관, 농장주와 같은 평범한 한국 남성들은 말할 창구도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는 팍팍한 이주 여성들의 현실을 악용해 수많은 성범죄를 저질러 왔다. 친구가 사돈을 성폭행하도록 돕고 형부가 처제에게 성폭행을 저지르는 등 인륜도 없고, 상식도 통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이제 이주 여성들 역시 자신들의 피해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외치고 있다. 한국어에 서툴러 이러한 절박한 호소마저 다른 사람 입을 빌려야 할 정도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이주 여성들의 현실이다.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이 출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어머니를 초청했다. 딸이 있는 한국에 왔던 피해자는 사돈댁 농사일을 도우러 갔다가 사돈 친구에게 강간당했다. 친구가 강간하는 동안 바깥사돈은 멀쩡하게 밖에서 망을 보았다.


외국인 고용 허가제로 입국한 캄보디아 여성은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여성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주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고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주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4가지 요구안을 발표했다.

1) 체류 지위와 관계없이 국내 체류 모든 이주여성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의 종합적인 대책과 창구마련 

2) 체류 불안 없이 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폭력 피해 이주 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한 지원 체계 마련 

3) 이주 여성 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성폭력 대책 마련 

4) 선주민에 대한 다문화 감수성에 기초한 폭력 예방 교육과 인권 교육


그동안 이주 여성 피해자들은 경찰이나 검찰 같은 공적 기구들을 통해서 피해를 호소하기 보다는 이주여성쉼터와 같은 민간단체의 도움을 얻어 비공개적으로 호소해 왔다. 이주 여성이라는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이주 여성들은 노출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주제에 대한민국에서 인권을 주장하느냐, 싫으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편견과 불편한 시선도 이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가해자가 평범한 한국 남성이라는 점도 이주 여성 피해 사건에 관심이 덜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주 여성들은 미투의 세계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관심 가져 달라”는 이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이고 힘을 모아줘야 한다.


이외에도 근로자 지위가 인정 안 되는 보험 설계사 등 특수 고용직 여성은 성희롱 피해를 당해도 고용 노동부에 진정을 낼 수가 없다. 경찰에 신고해도 사실상 강제 추행이나 강간이 아닌 성희롱은 처벌이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로 가도 절차 진행에 몇 년씩 걸리며 진을 뺀다.


파견 회사 근로자인 여성 역시 사용 사업장 내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피해 구제를 호소할 데가 마땅치 않다. ‘고객’인 사용 사업장에 ‘성희롱 가해자를 징계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파견 회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불거지면 피해 여직원에게 ‘네가 그냥 관둬라’라고 압력을 넣기도 한다. 피해를 당하고도 그 뒷감당은 오롯이 피해자 자신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직원은 2년만 참고 버티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생각에 직장 상사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울며 겨자 먹기로 견디기도 한다. 대부분의 성추행 및 성폭력이 권력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반인 미투의 어려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남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도 주목을 받기가 쉽지 않다. 아직 가부장적인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 “남자가 당한 게 창피하다”고 느끼기에 이를 폭로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성범죄 관련 법 자체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성희롱 관련 규정이 남녀고용평등기본법, 양성평등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분산돼 있어 피해자의 구제 및 법 집행의 통일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이 직장 내 내부 징계에 만족하지 못해 형사 고소를 한 경우 법원에서는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 단일 법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은 이미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하지만 이 흐름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미투 운동은 주로 유명인인 가해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처벌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누구라도 사회적 약자가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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