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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 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7-17 09: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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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7-1 성폭력과 성차별- 샴쌍둥이 마초문화


몇 년 전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있었다. 조현병 환자였던 가해자는 화장실에 들어온 여섯 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후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범행 동기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였다. 그런데 이런 가해자의 말은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나갔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 여성은 ‘강남역 화장실녀’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이다”며 여성들의 대대적인 애도와 추모 행사가 계속되자 한 신문에는 ‘강남 묻지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자칫 이런 분위기가 ‘남성 혐오’로 옮겨가서 남성들을 위축시키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의 표시였다.


한국에서 ‘남자의 기’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똑똑하고 기센 여자가 남자의 기를 누르는 행동은 금기시된다. 그리고 여자에게 무시당한 남자의 분노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상습적으로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이 자주 쓰는 레토릭이 바로 “네가 나를 무시해서”이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성차별적인 고정 관념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자란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시선을 내재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차별적 사고가 굳어지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방송에서는 연일 성차별적인 언급이나 농담이 가벼운 오락의 소재가 된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보도에 있어서도 그런 범죄를 저지른 자가 적절하게 처벌을 받을지 여부보다 피해자의 신상털기에 더 관심을 가진다.


특히 직장 내 성추행은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차별이라는 시스템화 된 구조의 문제임에도 가해자 ‘개인’만의 일탈 행동으로 치환시키는 한편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잘못된 생각들이 여성들에 대한 폭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2015년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 고교 과정’을 보면 “성관계를 갖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함께 숙박업소에 가지 않는다.”, “데이트 비용을 많이 사용하는 남성 입장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 폭력이 발생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숙박업소에 따라 들어간 여성에게 비난과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함께 숙박업소에 갔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No!”라고 했는데도 중단하지 않았다면 그건 성폭력에 해당한다. 데이트 비용을 많이 낸 남자가 상응하는(?) 보답을 받지 못해 데이트 폭력이 발생한다니! 어떤 경우에서건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데이트 폭력 역시 다르지 않다.


한 초등학교 여교사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 “임신이 취미생활이구만”하며 빈정대던 교감이 교육장까지 하며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며 더 좌절했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부터 인권감수성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성차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인 <로보카 폴리>나 <뽀로로>의 등장 캐릭터를 보니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역할은 남성이, 보조적인 역할은 여성이 주로 담당했다는 분석 결과를 본 적이 있다.


2016년 서울YWCA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와 종편의 TV 프로그램 22개 드라마를 모니터링한 결과 성차별적 내용은 108건에 달했다. 방송사 자체 인권 가이드라인도 있지만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성 차별이나 배제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을 준수했는지 제도권 미디어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미투 운동의 열기가 뜨거운 요즘이다. 그런데도 최근 어느 회사의 신입 사원 면접에서 “직장에서 상사가 성희롱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그걸 왜 여성지원자에게 물어보나?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발생한다면 우리 회사에서는 이러이러한 대책 매뉴얼과 구제 방안이 있으니 안심하고 지원하라는 말은 왜 못하는가?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 2017’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조사 대상 144개국 중 118위로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별 격차는 교육성과, 경제 활동 참여 기회, 보건, 정치적 권한 등 4개 부문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특히 경제 활동 참여 기회 부문의 지표 중 하나인 남녀 간 임금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추정 근로 소득은 남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여성노동계가 ‘3시 스톱’ 행사를 했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로, 1일 근로시간인 8시간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한다는 뜻을 담은 항의의 퍼포먼스였다.


정치적 권한 부문에서도 여성 각료 비율 항목은 115위에 불과했다. 의회에 소속된 여성 의원이 세계 최고 수준인 61%에 이르는 르완다와 비교할 만하다.



이처럼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빈번하게 성희롱이나 성추행까지 당한다. 그러나 지위를 이용한 권력 관계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직장 내 성폭력은 문제 제기하기도 어렵고 조직적 은폐가 이루어지기도 쉽다. 진정이나 고소 등을 해도 기소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가해자가 주요 보직을 맡고 있거나 인사권자인 경우 오히려 피해 여직원이 인사 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한국의 여성들은 성차별과 성희롱이라는 샴쌍둥이 마초 문화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성희롱 장소가 은밀한 곳이 아니라 ‘음식점 또는 카페’(37.9%)나 ‘사무실’(37.3%) 순으로 높게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가해자 열 명 중 일곱 명은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의 행위를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무심코 내뱉는 성희롱을 여성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이처럼 성희롱을 가볍게 여기는 남성 중심 마초문화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성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성들이 성(性)을 가볍게 여기고 여성에 대한 성희롱을 농담 수준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만연돼 있다. 직장이나 조직 내 문화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쉽게 용인하는 분위기이면 구성원들은 별 죄의식 없이 이에 편승하기 쉽다.


최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의미가 크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회사의 공식적인 책임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의무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의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적극적인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현행법은 사업주의 성희롱 예방 교육 및 직장 내 성희롱 금지와 성희롱 발생 시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을 뿐 직장 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및 추행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조치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다. 이제는 법 개정으로 인해 사업주가 직장 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및 추행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이를 수사 기관에 즉시 신고하고, 피해 근로자 또는 피해 발생 사실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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