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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7-2 ‘성희롱’이라 쓰고 ‘권력 갑질’이라 읽는다. )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7-21 15: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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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7-2 ‘성희롱’이라 쓰고 ‘권력 갑질’이라 읽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숫자로만 따질 일이 아니다. 여성들이 맡은 업무의 비중이나 실제 이루어낸 많은 성과들은 성 역할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여성 법조인이 늘어나다 보니 새로운 풍속도 생겼다. 대부분 회식의 대미를 장식했던 폭탄주는 와인이나 에스프레소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여성에 대한 배려는 비단 회식 등 일상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아직은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 법조인이 미래 한국의 법원, 검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유리천장’을 거두는 용기와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


위의 칼럼은 누가 썼을까?

바로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검사이다.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 법조인들을 위해 ‘유리천장’을 거두는 배려를 해야 한다고 글을 쓴 사람과 이 글을 쓰기 몇 달 전 동료 검사의 상가에서 서검사를 성추행한 사람은 놀랍게도 동일인이다.


연출가 이윤택은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각본을 썼다. 강제로 키스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들의 문제의식과 성추행 범죄라는 현실 사이에 이처럼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바탕에는 ‘권력’의 문제가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직장 내 약자이다. 가해자가 괴물이거나 악마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권력을 남용·악용하는 구조에 있다. 피해자가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차마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은 가해자가 지닌 막강한 권력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다.” 이윤택의 성추행 피해 여성이 한 말이다. 연극계에서 절대 권력자인 그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항의하거나 고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성희롱 피해경험 조사를 한 결과 여성의 52%가 성희롱 피해를 당했는데 가해자는 직장 상사나 고용주가 65.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성희롱이 권력 관계가 수반된 폭력인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힘들게 외쳐왔지만 모두 묻혀 버리곤 했다. 권력자의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터져 나와도 반짝 이슈로 끝나고 어느새 가해자가 슬그머니 복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계약직인 경우 잘릴까 봐 성추행당해도 문제 제기조차 힘들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직장 상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쉽게 성추행을 감행한다.


20~30대 여성 직장인들은 미투를 하고 싶어도 결국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해 나서기가 쉽지 않다. 위계연공·남성중심적인 직장에서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업무 평가나 정규직 전환 등의 ‘키’를 쥐고 있는 남성 상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힘들게 신고했어도 문제 직원 등으로 낙인찍혀 원만한 직장 생활이 어려워져 ‘중도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Me Too’는 단지 성적인 문제가 아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에서 성폭력은 삶의 안정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직장 내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 중 13%가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사내 성희롱 관련 상담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성도 성희롱 피해의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직장 내 성범죄가 어느 한 개인의 일탈 행동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은 지금의 부당한 성권력 관계를 더 이상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절박감과 고통으로부터 출발했다. 이제는 피해를 낳게 한 권력 구조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단순한 성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적인 권력을 통한 폭력 문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남녀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사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제대로 조사되고 엄하게 처벌되어야 피해자들이 성폭력 문제를 신고하고 지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도 강간미수범들에게는 어린 10대라도 성인 남성이 견디기 힘들 정도인 장형을 100대 때리고 3천리 밖으로 유배시켰다. 기생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동의가 없었다면 강간으로 처벌했다. 피해 여성이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는 형량참작의 대상이 아니었다. 성범죄에 있어서 피해 여성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여성의 정당방위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오늘날 한국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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