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7-10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 박은희 기자
  • 등록 2023-10-10 10:28:38

기사수정

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최근 한 전도유망한(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정치 지도자의 성폭행 사건은 많은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앞에서는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어떻게 아무 죄책감도 없이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80년대 진보 운동은 “페미니즘 넘어 휴머니즘”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성평등’이란 가치는 빠져 있었다. 인권·민주주의·평등 이런 가치에서도 여성이 배제되어 온 것이다. ‘진보적 젊은 남자’도 이런 가치를 체화하지 못했다.


남성적인 조직 문화나 남성 중심적인 위계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것들이 이젠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변화함으로써 범죄 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아직도 많은 남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동안 남자들이 여자를, 그리고 약자를 대해 온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달아야 할 때이다.


남자들은 권력 있는 자에게 순종하고 권력 없는 자에게 권력을 부리면서 남성성을 구축해 왔다. 그 가운데 절대적 타자로서 여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의 모든 공적 영역에서 남성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사기업에서 의사 결정권이 있는 자리에 여성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안에서 “찌질한 놈”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 남자들도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이들이 여성을 동료나 사업 파트너로 인정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한 엘리트 교수는 “내가 만난 여자라고는 집에 있는 마누라와 딸, 술집 여자밖에 없다”고 말한다.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서 여성의 존재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나 역시 모임의 총무를 함께 맡은 남자 총무와 의견이 달라 논쟁이 있었는데 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어디 여자가 주장을 하고 나대느냐?”라며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남자들의 수준에 어이가 없었던 경험이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처럼 이들은 여자의 거절을 “No”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대가 좋아하든 말든 찍어 넘어뜨리겠다는 나의 불굴의 의지의 대상이 될 뿐이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거나 무시당한다. 여성이 목소리를 낸다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서구에서는 성폭력 개념에서 핵심적인 게 ‘성차별‘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치 철학자 아이리스 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조적 부정의’속에 놓인 사람들은 본인이 의식하든 못하든 구조를 돌아가게 하는 직접적인 수행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 녹아든 구조 속에서 행위자들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 조차도 포르노그래피적으로 가볍게 소비한다. 자신도 모르게 성희롱이나 성추행 범죄의 동조자·묵인자로 가해자가 됐던 경험들을 성찰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인식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때가 왔다.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성차별적인 언행이나 문화적 관행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자기 행동들을 규율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 영역의 책무이기도 하다. 성폭력과 여성 차별의 문제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정치 영역에서의 성평등의 실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는 성차별적인 교육체계를 바꾸고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한다. 고용 노동부는 성희롱 문제와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청와대에는 왜 여성 비서관 직책이 없는가?


‘성 평등 민주주의’야말로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성폭력 피해 경험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폭력 등은 중대한 인권 침해이지만 범죄라는 인식조차 부족했던 것이 현실이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차별과 동조, 침묵의 구조가 더 큰 문제이다.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와 인식을 바꿔내지 않는 한 성폭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막을 내렸다. 침묵을 넘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연대의 물결에 의식 있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당신은 성차별에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NO”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 ‘성평등 민주주의’의 출발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성평등 민주주의’는 여성과 남성을 모두 포함한 우리 삶의 변화로 연결되어 우리의 삶을 바꾸게 될 것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성남시 드림스타트 아동 150명 무료 건강검진 받는다 성남시(시장 신상진)는 드림스타트 사례 관리 대상 아동 150명이 지역 병원의 후원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받게 됐다고 24일 밝혔다.  시는 최근 메디피아 메디피움 분당의원(서현동 소재)과 드림스타트 아동 건강검진 후원에 관한 서면 협약을 했다. 올해로 13년째다. 이에 따라 드림스타트 사업 대상 아동 가운데 검진 신청한 초등학생(150명...
  2. 위례어울림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각지대 고독사 ZERO 지역주민 만나기 캠페인’ 실시 위례어울림종합사회복지관(관장 오영희)은 지난 25일 위례31단지아파트에서 ‘복지사각지대 고독사 ZERO 지역주민 만나기 캠페인’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이웃 간 관심과 참여를 통해 지역 내 고립되고 위험에 처한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굴하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주민들의 인...
  3. 광주시가족센터 '1인가구 병원안심동행'사업 운영 광주시가족센터는 1인가구의 건강한 삶과 정서적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병원안심동행’ 사업을 추진중이다. 이 사업은 병원 진료 시 보호자나 동반인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1인가구를 대상으로 병원 진료 동행 및 정서적 지지, 행정 안내 등을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다.  참여를 원하는 1인가구는 광주시가족센터(070-4706-3619) 또는 ...
  4. 고양시건강가정지원센터, 1인가구 재무·경제 교육 ‘레벨 업!’ 진행 고양시 건강가정지원센터(센터장 성진경)는 KB금융공익재단과 함께 7월 12일, 19일, 26일 3주간 6회기에 걸쳐 청년과 중장년을 위한 재무·경제 교육 ‘레벨 업!’을 실시했다.  센터에서 진행된 1인가구 재무·경제 교육은 청년과 중장년에 맞춘 교육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청년 1인가구 맞춤형 경제·재무 교육 ‘...
  5. 고양시 건강가정지원센터 – 문촌7종합사회복지관, ‘웰빙 노마드’ 은둔가구 발굴 및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 체… 고양시건강가정지원센터는 23일(수) 문촌7종합사회복지관과 고양시 관내 은둔 청·중장년 발굴 및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였다. 협약식에는 고양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성진경 센터장과 문촌7종합사회복지관 윤영 관장을 포함한 양 기관의 관계자 4명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양 기관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되었으.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