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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날다'를 연재합니다. (6-4 펜스 룰(Pence Rule)- 미투 운동과 새로운 벽)
  • 문현숙 기자
  • 등록 2023-06-12 09: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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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투 캠페인을 보는 불편한 시선들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6-4 펜스 룰(Pence Rule)- 미투 운동과 새로운 벽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된 한국판 미투 운동은 2018년의 대한민국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시인 고은,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영화감독 김기덕, 정치인 안희정, 정봉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로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일상적으로 별 죄의식 없이 벌어지던 성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남성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여성을 대하는 행동이나 말 한마디도 조심하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불필요한 회식 자리도 현저히 줄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벌써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연이은 미투 폭로에 부담을 느끼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 일명 ‘펜스 룰(Pence Rule)이 그것이다.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됐다.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아내 이외 다른 여성들과 개인적인 교류나 접촉을 일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SNS에는 ‘여자들이 무섭다’, ‘까딱 잘못 걸리면 인생 망친다’, ‘아예 회식은 남자들만 하자’며 ‘펜스 룰’을 지지하는 공감 댓글이 넘쳐난다. “회식 자리에 같이한 여성 동료에게 자리가 끝날 때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각서까지 받자”는 주장도 들린다. 연애 상대인 여성과 매번 ‘스킨십 합의 계약서’를 작성해야 향후 남성이 허위로 성폭력 고발을 당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의 ‘펜스 룰’이라는 만화도 인기다.


이러한 ‘펜스 룰’에 대한 과도한 부각은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를 혁신하는 의미 있는 사회 운동으로 자리매김 하기도 전에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실제로 일부 남성들은 “여성과 말조차 안 섞겠다”며 ‘여성 배척’ 현상을 보인다. 직장 생활 등에서 성폭력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여성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 자체를 피하려 한다. 남성 상사들은 여성 부하 직원과 대면하는 대신 전화나 메신저를 이용해 업무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리천장’이라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임원급으로 올라갈수록 남성이 압도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과의 업무상 교류가 차단된다면 여성 직원들은 심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웬만하면 여자를 채용하지 않는다” 등 펜스 룰의 구체적인 실행 방식도 제기된다. 이런 여성 배척을 피하고 운신의 폭을 넓히고자 여성 스스로 “미투 안 한다”는 ‘명예 남성’ 선언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오해를 피하고 싶은 남성들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편한 심경도, 자칫 미투라는 태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몸 사리며 스스로 위축되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소위 ‘펜스 룰’이 이제 막 용기를 내어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을 따돌리고 조롱하거나 여성에 대해 새로운 장벽을 치는, 또 다른 형태의 여성 배제와 차별을 야기하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펜스 룰’이 성폭력 가해를 조심하려는 성찰적 행동이나 성폭력을 유발하는 남성 중심적인 위계질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를 심화시키고 여성에 대한 차별만 강화시키는 정당화의 논리로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펜스 룰’이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다. ‘성폭력의 원인은 여성이 남성의 성욕을 유발하기 때문이며, 성폭력 피해 고발은 예민한 여성들의 과도한 반응인 경우가 많다’는 남성 중심적인 생각이 펜스 룰의 논리에 흐르고 있다. 따라서 ‘펜스 룰’은 성폭력을 막는 조치가 아니라 남성들이 성폭력 가해자로서 고발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방어 기제일 뿐 근본적인 성폭력 예방책은 될 수 없다.


미투 운동은 남성에 대한 대항이나 성 대결이 아니다.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상호 소통적으로 만들고 성폭력 민감성을 키우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한마디로 남녀 모두의 인권에 관계된 것이라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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