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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 훼손죄?
  • 박은희 기자
  • 등록 2023-09-25 14: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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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송문희 저자

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현 정치평론가 / 전략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대한 해결 의지를 믿고 싶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 미투 운동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SNS 등에 익명으로 폭로하며 가해자를 특정하기를 꺼린다. 평소 성범죄 가해자보다 피해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우리나라의 관행 때문이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은 대부분 신상이 털리고 꽃뱀 논란 등에 시달리거나 불이익 조치를 받는 등 직장 생활까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사실을 폭로해도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명예 훼손죄도 피해자들을 위축시킨다. 형법 307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부 가해자들은 이 조항을 악용해 피해자들을 고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법원은 사실 적시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지 여부, 그 표현에 의해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그 침해의 정도, 그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명예 훼손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모호할 수 있어 문제이다.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피해 여성은 수사 기관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시달리며 더 심한 2차 피해를 받기도 한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 훼손죄’ 형벌 조항이 가해자의 범죄를 은닉하는 데 일조해 온 셈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실적시 명예 훼손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영국도 2010년 ’사인 간 명예 훼손죄‘를 폐지했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 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우리의 현행 법 규정에 따르면 사실 적시를 위한 모든 표현 행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죄가 될 수 있다. 이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막고 억압하는 도구가 되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따라서 피해자가 ‘사실적시 명예 훼손죄’를 뒤집어쓰는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과 사회 제도가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두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핵심 가치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강간죄 판단도 문제이다. 법원은 성폭행이나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엄격히 해석한다. 폭행·협박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하는데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심각했거나 피해자가 강한 저항을 했을 때 혹은 도망친 경우로만 한정한다. 이런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은 점을 악용해 가해자는 “성관계에 ‘강요’는 없었다”고 일단 우기고 본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합의나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폭행이나 물리적 강압이 동반되어야 ‘성폭행’으로 인정하는 엄격한 법적 기준과 판례, 원치 않는 성관계는 성폭행 범죄라고 보는 피해자 간에 큰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독일은 ‘피해자가 싫어하면 성폭력’으로 본다. 캐나다도 피해자의 ‘적극적 동의’ 여부가 기준이 된다.이때 ‘적극적 동의’란 성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자발적인 동의이며, 침묵이나 저항 없음을 동의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도 성범죄의 구성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는 데서 벗어나 사건이 일어난 상황이나 관계 등을 당시 맥락에 따라 고려해야 한다. 성폭행 판단 기준을 ‘자유로운 합의나 동의 없는’ 성관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더라도 명시적인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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